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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우산.

힘쎈북극곰 2005. 10. 26. 15:48
(아버지의 우산)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는 하루하루 마른 꽃잎처럼 시들어 가셨다.

우리 가족은 조그만 집들이 들꽃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은 변두리 산동네로 이사를 해야

만 했고, 아버지는 그때부터 다른 사람이 되어 가셨다.

예전처럼 어린 우리들을 대해주시지 않으셨고, 웃음마저 잃어 가시는 듯 했다.

공부를 방해하는 우리 형제 때문에 누나가 공부방을 조를 때마다 아버지는 말없이 아픔

을 삼킬 뿐이었다.

하루는 내가 다 떨어진 운동화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볼멘소리로 어머니

를 향해 말했다.

“엄마, 아이들이 내 운동화보고 뭐라는 줄 알아? 거지 신발이래, 거지 신발!”

옆에 있던 형이 나를 툭 쳤다.

아무 말이 없던 아버지는 곧 어머니로부터 천 원짜리 한 장을 받아들고 술 한 병을 사 가

지고 들어오셨다. 그러고는 곰팡이 핀 벽을 행해 돌아앉아 말없이 술만 마시셨다.

산동네로 이사 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밤늦은 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산동네 조그만 집들을 송두리째 날려 보내려는 듯 사나운 비바람도 몰아쳤다.

칼날 같은 번개가 캄캄한 하늘을 쩍하고 갈라놓으면, 곧이어 천둥소리가 사납게 으르렁

거렸다.

비 오는 날이 계속되면서 곰팡이 핀 천장에는 동그랗게 물이 고였다.

그리고 빗물이 한 두 방울 씩 떨어지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빗물이 방울져 내렸

다. 어머니는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걸레대신 양동이를 벋쳐놓았다.

“이걸 어쩌나, 이렇게 비가 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손 좀 볼걸 그랬어요.”

엄마의 다급해진 목소리에도 돌아누운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 며칠 전, 오토바이와 부딪쳐 팔에 깁스를 하고 계시는 형편이었다.

잠시 후, 아버지는 한쪽 손에 깁스를 한 불편한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어머니에게 천원을 받아들고 천둥치는 밤거리로 나가셨다.

그런데 밤 12시가 다되도록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창밖에선 여전히 천둥소리가 요란했고, 밤이 깊을수록 우리들의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갔

다. 어머니와 누나는 우산을 받들고 대문 밖을 나섰다.

“우리도 나가볼까?”

아버지를 찾으러 나간 어머니와 누나마저도 감감 무소식이자 형이 불쑥 말했다.

“그래.”

식구들을 찾아 동네 이곳저곳을 헤맸지만 비바람 소리만 장례행렬처럼 웅성거릴 뿐이었

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집 앞 골목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우산을 받쳐 든 어머니와 누나가 지붕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저기 봐....”

누나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순간 나는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지붕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검은 그림자는 분명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천둥치는 지붕 위에서 온몸으로 사나운 비를 맞으며 앉아있었다.

깁스한 팔을 겨우 가누며 빗물이 새는 깨어진 기와 위에 우산을 받치고 계셨다.

비바람에 우산이 날아 갈까봐 한 손으로 간신히 우산을 붙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무

척이나 힘겨워 보였다. 형과 나는 엄마 뒤로 천천히 걸어갔다.

누나가 아버지를 부르려 하자 어머니는 누나의 손을 힘껏 잡아당겼다.

“아빠가 가엾어도 지금은 아빠를 부르지 말자. 너희들과 엄마를 위해서 아빠가 저것마저

하실 수 없다면 더 슬퍼하실 지도 모르잖아.”

어머니는 그때 목이 매여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빠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눈에도 끝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가난을 안겨주고 아버지는 늘 마음 아파하셨다.

하지만 그 날 밤, 아버지는 천둥치는 지붕 위에 앉아 우리들의 가난을 아슬아슬하게 받쳐

들고 계셨다.

아버지는 가족들의 지붕이 되려 하셨던 것이다.

비가 그치고, 하얗게 새벽이 올 때까지....


<행복한 고물상>저자 이철환님의 미니 홈피에서....

우리 모두 효도하고 삽시다!
하고 싶을때 해야지 나중에 가서 후회하는 법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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